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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 미안한데 오늘은 혼자 가야겠다. 끊는다.
-잠ㄲ,
기계음만 뱉어내는 휴대폰을 든 채 멍하니 눈만 깜빡이던 윤은 좀 전에 보낸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저 우산이 없어요.
태워다 주세요.] 요즘 들어 뜸한 연락에 큰 맘먹고 평소 하지 않던 짓까지 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는 어른이니까, 나처럼
학교와 집만 오가는 단순한 일상을 반복하는 어린애가 아니니까,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거잖아. 그저 너무 바빠서, 내게 말해주는 걸
잊을 만큼 정신이 없어서 그랬을 거다. 오늘 밤엔 분명 다정한 목소리로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토라진 나를 달래줄 텐데,
대체 뭐가 서운하다고 이러는 걸까, 나는? 철없는 저를 탓하며 윤은 가방 안에 든 우산을 꺼내 들고 교실을 나섰다.
왜
오늘 같은 날 일찍 가버린 거야, 전우치. 너만 있었어도 그런 문자 따위 보내지 않았을 텐데. 설령 그랬다 해도 모른 척
장난치는 너와 아무렇지 않게 투닥일 수 있었을 텐데. 맨날 귀찮게 하더니 정작 필요할 땐 왜 없는 건데. 진짜 싫어, 너. 텅 빈
복도를 지나 제 발소리만 울리는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윤은 애꿎은 우치만 원망했다. 지금쯤 귀가 가려울지도 모르겠다.
교복을 뒤집어쓰고 뛰는 이가 하나, 우산을 받쳐 든 채 빠르게 걷는 이가 둘. 희미한 형체들이 뿌연 빗속으로 금세 모습을 감춘다.
왠지 발이 떨어지질 않아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있던 윤은 한참만에 우산을 펼치는 대신 팔을 앞으로 뻗었다. 한층 더 굵어진 비가
손바닥을 사정없이 때려댄다. 아파. 그래서 울었다. 빗물로 얻어맞은 손바닥이 아파서.
감기라도 오려는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러가며 힘없이 걷고 있던 윤이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근처 상가로 급히 피했음. 하지만 도통 멈출 것 같지 않아 보이고.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지갑에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뛰기 시작하려는데 웬 차가 제 몸을 스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는 거. 옆으로 피하자 빵빵 경적이 울리고. 우산을 쓰고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타! 라고 하는 것 같은 입모양을 함. 미간을 구기고 빤히 바라보는 윤에게 조윤! 타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는 다시 차에 올라탐. 제 이름을 알다니 도대체 누군지 궁금해져 윤이도 조수석 문을 열었음. 남자가 내민 손수건으로 젖은 팔을 닦으며 저 아세요? 묻는데. 씨익 웃으며 전교 1등 조윤이잖아. 의문을 담은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누구신데요? 묻는 윤이한테 어깨만 으쓱여준 남자는 앞만 보며 운전할 뿐 더는 말이 없었음. 말해주지 않는 걸 굳이 캐묻고 싶지 않았던 윤이도 집 주소만 말해줌. 차는 그렇게 정적을 담은 채 달림. 집 앞에서 내려 고맙습니다 라며 꾸벅 인사하자 남자는 손을 들어 흔든 후 그대로 떠나고. 뭐야 싶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음. 몸이 슬슬 떨려오는 게 심상치 않았으니까.
결국 감기에 지독하게 걸려 밤새 앓다 다음날에도 골골대며 엎드려 있는데 뜨거운 이마도 짚어보고 제 옷도 덮어주던 짝 우치는 2학년 2반 조윤 이사장실로 오세요.라는 방송에 윤이를 살살 흔들어 깨움. 늘어지는 몸 일으키다 어지러워 휘청이는 윤이 잡아주며 같이 가줄까? 묻는데 살풋 웃어준 윤이는 그냥 혼자갈게... 라며 이사장실로 향함. 노크하고 들어간 곳에 있는 사람은 어제 그 남자. 놀라기도 전에 쓰러질 뻔한 윤이를 얼른 받아든 남자는 왜 이렇게 뜨겁냐며 소파에 앉히고. 한참 후 눈 뜬 윤이는 양호실 침대에 누워 우치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받고 있겠지.
그 후로 이틀에 한 번은 이사장실로 오라는 방송이 나오는데 왜 부르셨냐는 윤이 앉혀다가 묻는 거라고는 뭐 좋아하니? 주말엔 주로 뭐 하니? 저녁에 뭐 먹으러 갈래? 같은 사소한 것뿐. 처음엔 기막혀하던 윤이도 다정한 말투와 관심에 슬슬 마음이 열리겠지. 아버지한테 못받은 사랑을 저랑 스무살은 차이나는 수양이 채워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오늘은 고기 먹고 싶어요. 라는 말까지 자연스럽게 하게 될 정도로 가까워짐.
툭하면 호출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하교길에도 윤이를 채가는 이사장 때문에 점점 불안해하던 우치는 윤이한테 이사장이 뭐래? 어제는 어디 갔어? 묻는데 윤이는 태연히 그냥 밥 먹었다고 대답함. 이사장이 언제 돌변해서 무슨 짓 할지 모른다며 그만 만나라고 하고 싶지만 입 밖으로 차마 내뱉진 못하고. 윤이 좋아한 건 제가 먼전데 고백하기도 전에 뺏기게 생겼으니 안절부절못하겠지. 저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는 윤이한테 섣불리 다른 감정 드러냈다가 영영 못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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