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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조윤 1499

dbsldbsl 2015. 3. 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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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ㄴ유혼 같은



사람 해치는 귀신 잡으러 다니는 도사 우치와 대사 도치. 처녀 귀신이 남자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자자한 고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귀를 자극하는 거문고 선율에 발길을 옮김. 커다란 정자에 앉아 긴 머리 늘어뜨린 채 거문고 뜯고 있는 낭자의 자태에 홀린 듯이 다가가자 둘 다 넋이 나감. 살며시 미소 짓는 얼굴은 전국을 돌아다녀도 절대 보지 못한 미모였음. 입까지 벌린 채 멍하니 있다 먼저 정신 차린 도치가 이건 귀신이라고 소리 지르며 우치 머리 후려친 순간, 정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텅 빔.

둘은 음산한 절에 묵으면서 투닥거림. 도사라는 놈이 귀신인지 사람인지도 모르고 홀리냐. 네놈은 중이면서도 홀렸지 않느냐. 그러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아까 그 낭자, 아니 귀신이 와있음. 얼른 도망 가려는 윤이 잡아서 처녀 귀신한테 직빵인 주문 외우는데 들어먹을 리가 없지. 둘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도력을 감지한 지하세계 악덕 포주 형배가 윤이 데리러 와라. 격렬한 대결이 끝난 절 앞마당엔 윤이가 흘린 빗 하나만 남아 있겠지. 말없이 주워 소매에 넣는 우치.

다음날 밤 다시 나타난 윤이 어제 잃어버린 빗 찾느라 분주한데 어제 그 기운이 느껴짐. 놀라 도망 가려는 윤이 우치가 잽싸게 붙들겠지. 잃어버린 게 있지 않소? 답 없이 붙들린 팔 빼내려는 윤이 안 놔주는 우치. 그때 마을에 내려갔다 돌아오던 도치가 그 광경 보고 아이고, 저놈이 또 홀렸나, 큰소리로 주문 외우며 달려오다 어제 안 통한 거 생각나서 멈칫하고 미간 구기며 다른 주문 찾아 기억 뒤지는 사이 우치가 윤이 앞 막아섬. 그러거나 말거나 번뜩 떠오른 주문 웅얼대기 시작하던 도치 민머리에 돌멩이 하나가 날아들어라. 눈알 부라리며 달려들려는 도치 가슴팍 기다란 봉으로 꾸욱 찌른 우치. 잠시 몸이 굳어 꼼짝도 못하게 된 도치를 두고 윤이를 안으로 이끄는데. 그걸 보면서도 도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크응 콧김 내뿜기 뿐이었음.

윤이 손목 계속 붙든 채로 사연이나 들어봅시다, 라며 의자에 앉히고 그 앞에 버티고 선 우치. 체념한 표정으로 짧게 뱉어낸 한숨에 이어진 건 할 말 없소, 라는 한마디. 우치는 그제야 깨달음. 윤이가 사내인 걸. 저나 도치나 지금까지도 알아채지 못한 게 기가 막힌데 그보다는 호기심이 더 큼. 그래서 우치는 고개 돌린 채 입 꾹 다문 윤이한테 빗을 슬쩍 보여줌. 중요한 물건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윤이는 덤덤히 제 이야기를 시작함. 어제 보아 알겠지만 나는 처녀귀신이 아니오. 여인이 아닐뿐더러 처음은 더더욱 아니니까. 기생 어미 밑에서 자라다 하루아침에 양반가의 자제가 된 윤은 일 년도 채 되기 전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가문을 이어갈 적자가 세상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맛본 애정,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없어 어떻게든 아비의 마음을 돌리려 갖은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리 내어 글을 읽어도, 아침 문안을 올리러 사랑을 찾아도, 돌아오는 건 냉담한 시선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받지 못하게 된 건 윤이 열살이 되던 해, 고열로 사경을 헤매고 난 뒤였다. 심하게 앓아 해쓱한 얼굴로 윤은 영문도 모른 채 제 처소에서도 쫓겨나 허름하고 외진 별채에 갇히다시피했다. 저를 두고 가려는 종놈을 붙들고 연유를 물었지만 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윤은 서책을 읽고 작은 밭을 가꾸며 하루 한번 제 끼니를 챙기러 드나드는 나이 든 종 하나와 몇 마디를 나누는 게 전부인 삶을 살게 되었다.

말을 이어가던 윤이 입을 닫고 느릿하게 눈을 감는다. 핏기 하나 없던 얼굴이지만 좀전보다 더 창백하게 질려 보이는 건 단지 귀신의 것이기 때문만은 아닐 테다. 굳이 도술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사무친 윤의 외로움을. 하이고 도사씩이나 되는 위인이 저 요사시런 얼굴에 홀려갖고 되도 않는 야그를 들어주고 있, 으읍, 우치는 손가락 둘을 맞부딪쳐 어느새 뚫린 도치의 입을 다시 막았다.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쿵, 쓰러지는 소리까지 내는 도치 때문에 결국엔 윤도 눈을 떴다. 저 경솔한놈만 아니었어도 얼마든지 더 기다려줄 요량이었는데,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새 연지를 바른 듯 붉은 입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생을 이어가기만 하던 내게 손님이 찾아왔소.



익숙한 종의 허름한 꼴이 아닌 멀끔한 양반의 자태란 얼마나 현실감이 없었던가. 십여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은 윤이 정신을 차린 건 아직 앳된 사내가 뱉은 한마디를 듣고서였다.

-형...님?

아우였다. 내 종놈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반신반의했건만, 태어날 적 울음소리를 들은 게 전부였던,

-진정 천하절색이십니다.

저를 이 꼴로 만든 원수나 다름없는! 순식간에 타오른 분노로 내밀어진 손을 거칠게 뿌리친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보니 방안이었다. 저를 보고 빙글 웃는 얼굴에 무어라 쏘아주려던 윤은 채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신음에 그제야 제 입이 천뭉치로 틀어막혀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지가 묶여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윤은 달려드는 아우를 받아내야 했다. 성에 있어선 어린아이와도 같은 윤이었다. 아픈 만큼 울고 느끼는 대로 반응하면서도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날 이후에도 아비를 들먹이는 아우의 지시에 따라 귀까지 어두워진 늙은 종을 속여가며 몸을 섞었다. 고통보다 큰 쾌락에 윤은 쉽게 무너졌다. 겁탈로 시작한 관계가 상간 비슷한 것이 된 건 순식간이었다. 긴 세월 홀로 살아오다시피한 윤에겐 그마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정이며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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