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픈눈조윤 150311

dbsldbsl 2015. 3.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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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어머니 최씨한테 야단맞고 쫓겨나 집앞에서 울고 있던 꼬마윤이한테 창백한 손이 내밀어지면 좋겠다. 아가 아저씨랑 같이 갈래? 다정한 말투에 고개 든 윤이 와아... 하며 벌어진 입 다물지 못할듯. 아직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기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얼굴이라. 윤이 작은 손 뻗어 이리저리 만져보다 기다란 목에 매달리며 폭 안기겠지. 무서운 아버지나 툭하면 손찌검하는 아줌마보다 처음 보는 잘생긴 아저씨가 더 좋아서, 따라가면 절대 안된다던 유치원 선생님의 말이 떠오르는데도 모른척 품에 더 파고들겠지.


분명 아저씨가 눈물로 젖은 뺨도 닦아주고 침대에 눕혀 재워줬는데 아침에 눈떠보면 혼자일듯. 외로움이 익숙한 윤이라 울지도 않고 집으로 가기도 싫으니까 차려진 음식도 먹고 집구경도 하며 혼자 잘 놀다가 졸린 눈 비빌 때쯤 스윽 나타나는 검은 그림자. 아저씨이... 하며 달려가면 다정히 안아올려주겠지. 밤에만 볼 수 있는, 자는 동안 사라져 버리는 아저씨지만 함께 있을 때는 물론이고 기다리는 중에도 너무너무 행복한 윤이.


시간은 흘러흘러 고등학교 졸업식 겸 윤이 스무살 생일. 제겐 아무 의미 없는 진짜 생일 따위 대신 둘이 처음 만난 날이 생일이 되었겠지.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는 감격에,  조금도 변하지 않고 오래전 그날 모습 그대로인 그와 이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두근두근 잔뜩 기대하는 윤이에게 날벼락이 떨어지겠지.


달려가 안기려는 저를 밀어낸 그가 뿜어내는 냉기에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혈관이 비칠 만큼 창백한 뺨도, 선홍빛이 묻어 나올 듯한 붉은 입술도 분명 그대로인데 왜 이리 낯선 걸까? 손조차 뻗어지지 않는다. 한발짝도 뗄 수가 없다.


앉아봐.


한참만에 들린 낮은 목소리에 굳었던 몸이 가까스로 움직인다. 색이 옅은 눈동자를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아 윤은 고개를 숙인 채로 그저 말아쥔 두주먹에 시선을 고정했다.


윤이 너도 이제 다 컸으니 네 인생 찾아서 떠나야지. 준비는 적당히 해뒀어. 별로 힘든 건 없을 거야.


쿵,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다. 묻어두었던 과거 따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자꾸만 다가오는 현실을 모른척하고 싶었다, 언제까지라도.


지,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떠나라니? 뭐, 뭘 준비해?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로 시야가 뿌옜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는 제가 듣기에도 축축이 젖어 있었다.


네 아버지... 얼마전부터 너를 찾고 있다더라. 남동생이 사고를 당했다나봐.

말도 안돼. 그래서 날 보내겠다는 거예요? 멋대로 데려와 놓고 이러는게 어딨어.

그러니까 제자리로 돌아가라잖아. 도와줄게.

싫어. 나 버리지마요, 당신 없이 못 사는 거 알면서. 계속 여기 있을래.


언제까지 이렇게 같이 지낼수도 저처럼 괴물로 만들 수도 없으니까 보내주려는데 윤이가 받아들일리 없겠지. 계속 고개 저으며 눈물만 뚝뚝 흘리는 윤이한테 절로 내밀어지는 손 얼른 거두며 일어서는 순간, 조금 더 빨리 튀어나간 윤이가 손에 칼 들고 있어라. 말리기도 전에 제 목 긋는 윤이. 얼른 다가가 입 대려다 말고 멈추는 픈. 피는 뭉텅뭉텅 쏟아지고 윤이 숨 거두기 직전인데 망설일수밖에 없겠지. 인간 윤이를 살리기엔 시간이 너무도 부족하고 남은 건 제 타액으로 벌어진 상처를 핥아 아물게 한 후 피를 나눠주는 것뿐인데. 그랬다간 저처럼 영원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니까. 품에 안긴 윤이 옅게 웃으며 입만 뻐끔대다 스르르 눈감는 거 보고 결국 윤이 목에 혀 갖다대는 픈이 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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