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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윤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검을 들고 숲으로 향하곤 했다. 그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한 서인이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몰래 그 뒤를 살금살금 따랐지만 진작에 눈치를 채고도 모른 척 걷던 윤은 그저 뒤를 한 번 힐끗 돌아보곤 긴 다리로 성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윤을 따라 숨이 가빠질 만큼 뛰어도 어린아이일 뿐이었던 서인은 금세 윤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윤을 찾느라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 어느새 새어 나온 울음이 숲을 울리고 나서야 냉정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윤은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지만 좀 전과 달리 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서인은 뛰지 않아도 되었다.
그 뒤로도 윤의 주위에는 변함없이 찬바람이 일었다. 그래도 서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늘 뒤를 따랐다. 저를 밀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는 윤을 바라보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분명 날카롭고 매서운 움직임인데도 하강한 선녀 같다 여겼다. 그건 단지 누이들보다도 훨씬 고운 얼굴 때문은 아닌 듯했다. 함께 숲길을 걸으며 눈을 맞춘 채 담소를 나누고 싶었다.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형과 수련을 하다 땀을 흘리고 검을 맞대는 동등한 관계가 되길 바랐다.
단단히 결심을 한 서인은 여느 때처럼 윤을 따라 걷다 눈앞의 옷자락을 냉큼 붙들었다. 적잖이 놀랐는지 눈을 커다랗게 뜬 윤이 제 손을 뿌리치는데도 서인은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숲에선 처음 듣는 목소리다. -검을 배우고 싶어요. 저도 형님처럼 무인이 될 거예요. 가슴까지 탕탕 쳐대며 외치는 어린 아우의 모습에 윤은 기가 차다는 얼굴을 했다.
서인은 금세 뒷모습이 희미해질 만큼 멀어진 윤을 따라 뛰었다. -형님, 같이 가요. 제 외침에도 걸음을 늦춰주기는커녕 아예 모습을 감추어버린 윤이지만 야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손안에 가득한 매끈한 감촉에 그저 신이 났을 뿐이다. 뒤늦게 목적지에 도착한 서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이미 훈련을 시작한 윤을 바라보며 거칠어진 호흡을 골랐다. 움켜쥔 주먹 밖으로 길게 뻗은 목검에 시선이 닿자 진정되려던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며칠 내내 졸라댄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윤이 집을 나서자마자 건넨 것이다. -이, 이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저를 바라보던 윤은 어딘가 낯설었다. 언제나 표정 없던 얼굴이 순식간이었지만 조금은 웃었던 것도 같다.
서인은 몸을 일으켜 엉덩이를 대충 털어내고 윤에게 다가갔다. 무언가를 일러주리라 기대에 들떴던 것도 잠시, 한참이 지나도 제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윤을 향해 서인은 그저 입만 한번 내밀어 보였다. 형님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내 스스로 익히면 되는 것이지. 비장하기까지 한 얼굴로 윤의 유려한 몸놀림을 따라 목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지만 너무도 어설픈 움직임에 기분은 금세 가라앉았다. 게다가 요령 없는 움직임은 반 시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마에 커다란 혹을 만들어 주었다. 물론 그 대가는 모조리 윤의 몫이 되었다. 감히 가문의 장자를 해하려 했냐며 분노한 조대감에게 윤은 종아리가 터지도록 매질을 당하고 광에 이틀이나 갇혀야 했다. 뒤늦게 아랫것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서인은 왜 진작 알리지 않았냐며 야단을 했으나 제가 미리 알았다 한들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윤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제 눈에도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차가웠으니.
그날 이후 윤의 옷자락조차 쉬이 볼 수가 없었다. 어쩌다 운이 좋게 마주치기라도 하면 윤은 반가워 부르는 제 목소리를 못 들은 척 몸을 돌려 사라지곤 했다. 아침마다 숲으로 향하는 걸 알면서도, 창을 열어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더는 이전처럼 따를 수 없었다. 아주 조금은 마음을 열었던 형이 한심한 저 때문에 더 멀어져 버렸다.
그 덕에 일찍 철이든 서인은 적어도 윤과 관련해서는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윤이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제 그릇된 욕망으로 인해 윤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윤의 흔적이 가득한 검집을 매만지던 서인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문질러 닦아내고 서둘러 발을 옮겼다.
윤의 숨결처럼 희미한 빛이 처소를 밝히고 있었다. 문 앞을 지키던 장정 둘은 검을 들고 나타난 서인에 놀랄 새도 없이 이어진 광경에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나리 이게 무슨, -큰소리를 내면 내 목을 자를 것이다. 날카로운 검날을 제 목에 갖다 댄 서인의 경고에 안절부절못하던 이들은 입을 닫고 고개만 끄덕였다. 조용히 열린 방문 새로 비릿한 향이 퍼졌다. 붉게 물든 금침 위에 누워 옅은 신음만 흘리는 윤의 모습에 울컥한 서인은 목 안에 들어찬 뜨거운 덩어리를 애써 아래로 밀어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한 방 안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다.
-형님을 업어라.
-대감마님이 아시면 쇤네들은,
-내가 죽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있을 듯 싶으냐?
서인은 윤을 둘러업은 이를 앞서 걷게 하고 다른 이에게 주위를 경계하라 이르며 뒷문 쪽으로 이동했다. 저를 기다리고 있던 말 위에 윤을 태우려는 순간 감겼던 두 눈이 살며시 열렸다. 격한 움직임과 찬 공기에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작게 벌어진 입에 귀를 갖다 대기도 전에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서릿발같은 호령에 돌아선 서인은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형님을 보내주십시오. 혀를 차던 조대감의 신호에 종들이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윤의 주위에는 변함없이 찬바람이 일었다. 그래도 서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늘 뒤를 따랐다. 저를 밀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는 윤을 바라보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분명 날카롭고 매서운 움직임인데도 하강한 선녀 같다 여겼다. 그건 단지 누이들보다도 훨씬 고운 얼굴 때문은 아닌 듯했다. 함께 숲길을 걸으며 눈을 맞춘 채 담소를 나누고 싶었다.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형과 수련을 하다 땀을 흘리고 검을 맞대는 동등한 관계가 되길 바랐다.
단단히 결심을 한 서인은 여느 때처럼 윤을 따라 걷다 눈앞의 옷자락을 냉큼 붙들었다. 적잖이 놀랐는지 눈을 커다랗게 뜬 윤이 제 손을 뿌리치는데도 서인은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숲에선 처음 듣는 목소리다. -검을 배우고 싶어요. 저도 형님처럼 무인이 될 거예요. 가슴까지 탕탕 쳐대며 외치는 어린 아우의 모습에 윤은 기가 차다는 얼굴을 했다.
서인은 금세 뒷모습이 희미해질 만큼 멀어진 윤을 따라 뛰었다. -형님, 같이 가요. 제 외침에도 걸음을 늦춰주기는커녕 아예 모습을 감추어버린 윤이지만 야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손안에 가득한 매끈한 감촉에 그저 신이 났을 뿐이다. 뒤늦게 목적지에 도착한 서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이미 훈련을 시작한 윤을 바라보며 거칠어진 호흡을 골랐다. 움켜쥔 주먹 밖으로 길게 뻗은 목검에 시선이 닿자 진정되려던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며칠 내내 졸라댄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윤이 집을 나서자마자 건넨 것이다. -이, 이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저를 바라보던 윤은 어딘가 낯설었다. 언제나 표정 없던 얼굴이 순식간이었지만 조금은 웃었던 것도 같다.
서인은 몸을 일으켜 엉덩이를 대충 털어내고 윤에게 다가갔다. 무언가를 일러주리라 기대에 들떴던 것도 잠시, 한참이 지나도 제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윤을 향해 서인은 그저 입만 한번 내밀어 보였다. 형님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내 스스로 익히면 되는 것이지. 비장하기까지 한 얼굴로 윤의 유려한 몸놀림을 따라 목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지만 너무도 어설픈 움직임에 기분은 금세 가라앉았다. 게다가 요령 없는 움직임은 반 시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마에 커다란 혹을 만들어 주었다. 물론 그 대가는 모조리 윤의 몫이 되었다. 감히 가문의 장자를 해하려 했냐며 분노한 조대감에게 윤은 종아리가 터지도록 매질을 당하고 광에 이틀이나 갇혀야 했다. 뒤늦게 아랫것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서인은 왜 진작 알리지 않았냐며 야단을 했으나 제가 미리 알았다 한들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윤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제 눈에도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차가웠으니.
그날 이후 윤의 옷자락조차 쉬이 볼 수가 없었다. 어쩌다 운이 좋게 마주치기라도 하면 윤은 반가워 부르는 제 목소리를 못 들은 척 몸을 돌려 사라지곤 했다. 아침마다 숲으로 향하는 걸 알면서도, 창을 열어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더는 이전처럼 따를 수 없었다. 아주 조금은 마음을 열었던 형이 한심한 저 때문에 더 멀어져 버렸다.
그 덕에 일찍 철이든 서인은 적어도 윤과 관련해서는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윤이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제 그릇된 욕망으로 인해 윤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윤의 흔적이 가득한 검집을 매만지던 서인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문질러 닦아내고 서둘러 발을 옮겼다.
윤의 숨결처럼 희미한 빛이 처소를 밝히고 있었다. 문 앞을 지키던 장정 둘은 검을 들고 나타난 서인에 놀랄 새도 없이 이어진 광경에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나리 이게 무슨, -큰소리를 내면 내 목을 자를 것이다. 날카로운 검날을 제 목에 갖다 댄 서인의 경고에 안절부절못하던 이들은 입을 닫고 고개만 끄덕였다. 조용히 열린 방문 새로 비릿한 향이 퍼졌다. 붉게 물든 금침 위에 누워 옅은 신음만 흘리는 윤의 모습에 울컥한 서인은 목 안에 들어찬 뜨거운 덩어리를 애써 아래로 밀어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한 방 안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다.
-형님을 업어라.
-대감마님이 아시면 쇤네들은,
-내가 죽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있을 듯 싶으냐?
서인은 윤을 둘러업은 이를 앞서 걷게 하고 다른 이에게 주위를 경계하라 이르며 뒷문 쪽으로 이동했다. 저를 기다리고 있던 말 위에 윤을 태우려는 순간 감겼던 두 눈이 살며시 열렸다. 격한 움직임과 찬 공기에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작게 벌어진 입에 귀를 갖다 대기도 전에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서릿발같은 호령에 돌아선 서인은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형님을 보내주십시오. 혀를 차던 조대감의 신호에 종들이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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