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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조윤 160222

dbsldbsl 2016. 2. 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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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적떼를 소탕하라는 명을 받고 나주로 내려온 지원. 멀찍이 떨어진 언덕 위에서 말에 올라탄 채 부하들이 산채를 폐허로 만드는 걸 그저 관망하다 희한한 사내를 발견함. 긴 칼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베어 나가는 것이 보통 솜씨가 아닌 듯한데 정갈하게 상투를 틀고 철릭을 걸친 영락없는 양반의 모습이었다. 어찌 이런 곳에 저런 자가 있단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적 열세로 밀리던 산채의 우두머리는 남은 이들이라도 살릴 셈으로 항복을 했다.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명에 사내는 물론이고 무기를 쓰던 여인 두엇까지 줄줄이 끌려왔다. 물론 그 양반인 듯한 자도 오랏줄에 묶인 채 무리에 섞여 있었다. 근데 스쳐지날 때 본 얼굴에 피 한 방울 튀어있지 않았어라. 군관이고 화적이고 모두 꼴이 말이 아닌데. 허... 그 모습에 지원을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고. 어쨌든 그렇게 놈들을 관아로 데려가 옥에 가두었는데 잠들기 직전 부하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는 거.

-놈들이 의원을 불러오라 난동을 부립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며칠 안에 저자에 목이 걸릴 놈들이 수두룩하단 걸 저희들도 알 터인데. 의원을 불러다 무엇하려고.
-그게 저... 피를 쏟으며 쓰러진 자가 있는데 회임을 하였다고...
-애를 밴 여인이 칼이라도 휘둘렀다던가?

직접 옥으로 걸음을 해보니 쓰러져 있는 건 여인이 아니라, 피로 흥건히 젖어 원래의 녹색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검붉은 빛을 띈 옷자락의, 아까 그 양반의 모습을 한 자였다. 그의 머리를 무릎에 누이고 어쩔 줄을 모르는, 상당한 실력자로 보이던 민머리놈이 저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듯 옥문을 흔들어대며 소리를 지른다. 물론 안고 있던 그는 조심스레 내려놓은 채로.

-의원은 어디 있당가? 사람이 죽어 가는 거 안 보이오?
-사내가 아니었더냐?
-사내건 기집이건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 한시가 급항게 빨리 좀 내보내 달라고.
이 양반은 화적이 아니란 말이오. 우리, 아니 나한테 붙들려 있던 것뿐이여. 나가 억지로,

눈을 부라리며 악을 쓰던 놈은 허연 이를 드러내고 가슴팍을 쿵쿵 쳐댔다. 표정 없던 얼굴이 마지막 말에 미세하게 꿈틀댔지만 어두운 옥사에서 그만한 움직임을 알아챈 이는 없었다. 제 화를 못 이겨 결국 주저앉은 놈은 뭐라뭐라 중얼대는가 싶더니 얼마 안가 걸걸한 목소리로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그 꼴을 말없이 한참이나 응시하던 지원의 손짓에 옥문이 열렸다. 늘어진 몸에 손대려는 부하들을 밀쳐내고 직접 둘러업은 놈은 밖으로 나서려다 겨눠진 여러 개의 창에 멈칫했으나 지원은 그마저도 허락했다. 혼자서라면 도망칠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아까 제게 보인 눈빛이 너무도 절실했으니까.

둘을 굳이 제 처소로 데려온 지원은 민머리놈은 문밖에 묶어두라 이르고 금침 위에 누운 이를 천천히 살폈다. 저만큼이나 되는 장신인듯한데 창백하게 질린 낯이 참으로 묘한 것이... 아,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직접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회임이 가능한 사내가 있다는 뜬소문 같은 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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