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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조윤 150614-01

dbsldbsl 2015. 7. 1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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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야아, 나느은, 너밖에 없다아, 진짜야, 너까지 없었으며언, 나아... 계속 내 옆에, 있을거지이...


-알았어 알았어 나 어디 안가.


또 시작이네 여우 같은 새끼. 술도 약한 게 꼭 취하면 저런 말로 사람 흔들어놓고. 어차피 기억도 못할 거면서.


윤이 꼬인 혀로 저를 불러내 뱉는 말은 언제나 같았다. 나는 너밖에 없으니까 계속 내 옆에 있어. 윤의 마음이야 오직 우정일뿐이었지만 영화의 한심한 심장은 늘 듣는 말임에도 어김없이 두근댔다. 평소에는 윤영화 윤영화 꼭 성까지 붙여 부르던 놈이 이럴 때만 영화야지. 영화가 오랜 짝사랑에 지쳐 포기하려 할 때쯤이면 윤은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엉망으로 취해 고백 아닌 고백으로 발목을 붙잡았다. 그게 설령 영화가 원하는 방향은 아닐지라도.




전학 첫날, 교탁 앞에서 인사하는 내내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책에 파묻혀 있는 놈에게 눈이 간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성큼성큼 걸어가 마침 비어 있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안녕. 인사를 건넸지만 들리지도 않는지 그런척하는 건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작 이런 걸로 기죽을 윤영화가 아니지.


-이름이 뭐야? ...아 조윤이구나. 첫 시간은 뭔데? ...아 저기 써있네. 담임은 어때?


한참을 미친놈처럼 자문자답하고 있을 때 펜을 놓은 윤이 고개를 들다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너 누구...?


뭐야 진짜 안 들렸던 거야? 기가 막혀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작은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갔다. 빙글 웃는 영화의 눈을 피한 윤은 다시 책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달아오른 목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영화는 쉴 틈 없이 윤에게 말을 걸었다. 제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단답만 하는 게 얄미워 중간중간 짓궂은 농담이라도 던지면 금세 볼을 벌겋게 물들이는 순진함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저야 워낙 사교성이 뛰어나 전학생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금방 친구를 사귀다 못해 옆반 놈까지 알고 지낸 반면 윤은 왕따까지는 아니어도 은따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전교 1등에 집안까지 빵빵하다는 소문이 돈 탓도 있지만 도도하게 굳이 어울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매달리는 태도가 더 큰 이유였다. 물론 그 덕에 윤의 처음이자 유일한 친구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니 제겐 다행이었다.


다른 놈들과 어울려 떠들다 고개를 돌리면 가끔 빤히 바라보는 윤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 눈빛이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서운함이 담긴 것도 같았지만 저 외에 새 친구를 붙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진짜인지 그저 제 바람인지 어쨌든 제가 보기엔 윤도 딱히 다른 놈을 사귀길 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무리에 넣어주지 않았다. 가끔 친구 놈들이 저에게 윤에 대해 묻기는 했다. 조윤이랑 왜 노냐? 답답해서 숨 막힐 거 같은데. 라는 말에 쟤가 얼마나 순진하고 귀여운데. 따위의 답을 해주지 않은 건 그런 윤의 모습을 다른 놈들이 아는 게 싫어서. 조윤의 친구는 윤영화 하나뿐이었으면 해서.




-나 지금 너네 집 앞 놀이턴데 잠깐 나올 수 있어?


밤늦게 전화가 울렸다. 지가 신데렐라야 뭐야? 요즘 세상에 남자 놈이 통금이라도 있는 건지 7시만 되면 집으로 튀어가더니 갑자기 집 앞이란다. 왠지 불안한 마음에 영화는 젖은 머리를 털 새도 없이 뛰었다. 헉헉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자 그네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발장난만 하는 윤이 눈에 들어온다.


-웬일이야 이 밤에? 무슨 일 있어?

-그냥...


늘 듣던 목소리가 왠지 생소하게 느껴졌다. 뭐야, 왜 그래? 대답 대신 윤의 면바지 위로 툭툭 짙은 자국이 생겨났다. 영화는 얼른 무릎을 굽혀 윤과 눈을 맞췄다. 온통 젖은 뺨이 벌겋게 부어 있었고 입술엔 희미한 핏자국도 보였다. 저도 모르게 품에 당겨 안자 윤이 끅끅 억눌린 울음을 토해낸다. 영화는 제 티셔츠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몇 번이고 마른 등을 토닥였다. 처음 보는 윤의 눈물에, 처음 듣는 울음소리에 제 가슴도 시큰거리는 것 같았다. 한참을 훌쩍이던 윤이 새삼 부끄러운지 슬쩍 밀어내며 잠긴 목소리를 내었다. 이제 들어가. 터덜터덜 걷는 축 처진 뒷모습이 안쓰러워 붙잡고 싶었지만 영화는 그 자리에 붙은 듯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가느다란 실루엣이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그렇게...


그 후로도 윤은 가끔 저를 불러내어 눈물을 보였다. 자세한 얘기는 해주지 않았어도 뺨에 달고 나타나는 손자국이나 옷 사이로 드러나는 울긋불긋한 멍이 아버지로 인한 것이라는 것쯤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런 윤이 한없이 안쓰러웠지만 동시에 그런 사정을 아는 건 세상에 저뿐이라는 것에 우월감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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