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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조윤 161228

dbsldbsl 2017. 1. 4.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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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피디 영화 다리 폭파 사고 뉴스에서 얼핏 윤이 봤으면 좋겠다. 설마설마 제 눈을 의심했다가 다시 화면 이리저리 살피는데 잘못 본 건가 싶게 윤이 모습 도통 찾을 수가 없어라. 몇 번을 걸어도 연락은 닿질 않고. 사상자 명단을 아무리 뒤져봐도 윤이라는 이름의 스무살 남자는 없겠지. 성도 없이 한 글자뿐인 이름도, 더듬더듬 대충 둘러댄 것 같던 나이도, 무엇 하나 확실한 건 없었지만 비슷한 나이의 남자 이름을 아무리 훑어도 윤이가 아니라는 생각만 들어라. 잘못 본 걸 거야, 떡볶이나 한 봉지 들고 재워달라며 나타나 귀찮게 하겠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해도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잠도 안 오고 입맛도 없고 아주 죽을 맛이어라.


그러기를 일주일, 윤이는 여전히 연락 없고,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공들이던 선배 지수도 나 몰라라 하고 일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서 현관 쪽만 바라보는 게 일상이 돼버린 영화. 열일 제쳐두고 윤이만 기다리는 제 모습이 어이없어서 그딴 애새끼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고 마지막으로 찾아왔던 이 주일 전엔 지갑에서 돈까지 빼간 놈이라고 욕해봤자 치고 올라오는 걱정에 금세 입 닫겠지.

윤이가 빨아달라며 두고 간 반바지, 저 몰래 훔쳐 입고 가려다 걸린 새 티셔츠, 선물이라고 준 싸구려 향수 같은 거나 맨날 들었다 놨다 하면서 윤이 생각만 해라. 제 어깨밖에 안 오는 어린애였는데 어느샌가 비슷해진 눈높이로 나 이제 아저씨라고 안 할래요, 형이라고 부를 거야. 하더니 제멋대로 말도 놓고. 쫓기는 신세라도 되는 듯 엉망인 꼴로 나타나서 하룻밤만 재워달라 사정사정하는 거 차마 내치지 못했더니 그 뒤로는 제집 드나들듯 하며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샐샐 눈웃음치면서 애교 부리는 통에 그저 머리 한번 쥐어박는 걸로 끝내게 만들고 등등. 침대만은 절대 안 된다는 단호한 저에게 입 쑥 내밀고 던져준 이불 돌돌 만 채 누워 자던 윤이 전용이나 마찬가지였던 소파 위에서 맨날 윤이와의 기억들만 되새겨라.


그런 날이 계속될수록 피부는 까칠, 면도도 제대로 안 하고, 멍해있는 일이 잦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무슨 일 있냐며 걱정하고 그러는데 정신 차리려고 해도 잘 안되겠지. 처음 만났던 날, 길에 쓰러져있던 걸 굳이 집까지 데려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까? 어린애라면 질색인데 왜 신고를 하지 않고 재워주고 밥 먹이고 돈까지 들려 보냈었나, 같은 생각만 자꾸 들 뿐.

잠을 자도 윤이 꿈만 꾸는데 특히 마지막 모습이 자꾸 보여서 속만 태우겠지. 가끔 그러긴 했지만 그날은 유독 얼굴이 엉망이었음. 벌겋게 부어오른 뺨에 입술까지 터진 채로 재워달라는 꼴에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왠지 몰라도 티 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대했겠지. 여느 때와 달리 장난으로 받아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했는데 상처나 치료하자는 제 손목 붙잡고 한 말에 기겁해서 안 그래도 아파 보이는 애를 세게 밀치기나 했음. 나랑 자. 한참만에 겨우 정신 차리고 못 들은 척, 아무 일 없었던 척 얼굴에 약 바르는 동안에도 얌전히 있던 윤이 다 끝내고 일어서려던 영화 다시 붙들고 한 번 더 말했겠지. 자자고. 그딴 소리 할 거면 나가. 쳐다보지도 않고 약상자 정리하면서 뱉은 말에 아무 대꾸도 않더니 소파에 누워 이불 뒤집어쓰는 것까지 확인했건만 일어나 보니 없었던 거지.

그렇게 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시간은 흐르고, 5년 후 영화 또 뉴스에서 윤이 보면 좋겠다. 분명히 제가 알던 그 얼굴에 풍양그룹 후계자 조윤(24)이라는 자막 달려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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