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조윤 170314
-우리 윤이 오빠한테 초콜릿 안 주나? 윤이가 주는 거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뭐래?
눈이 째져라 흘기면서 톡 쏘아붙였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실은 좋은 쪽에 가까웠다. 슬쩍 올라간 입꼬리나 냉장고를 뒤적이는 제 모습이 바로 그 증거였다. 평소라면 서인이 차려놓은 걸 깨작대다 몇 술 뜨는 게 다였을 텐데, 윤은 지금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영화를 위해 직접 밥과 국을 데우고 식탁 위에 반찬까지 늘어놓는 중이었다. 이러고 있으니 꼭 남편한테 아침을 차려주는 아내라도 된 것 같잖아. 말도 안 되는 상상에 흠칫 놀라 고개를 세차게 흔들던 윤은 허리를 감아안는 힘에 숨을 멈췄다. 뜨끈한 기운이 등을 감싸고 묵직한 무언가는 어깨를 짓누른다.
-어이구 우리 윤이~ 이렇게 형 먹으라고 밥도 차릴 줄 알고, 다 컸네 다 컸어. 오빠한테 시집올래?
-비, 비켜 냄새나.
눈치 없이 쿵쿵대는 심장을 알아챌까, 뻣뻣하게 굳은 몸을 눈치챌까 윤은 볼까지 비벼대고 있는 영화를 힘껏 밀쳤다. 퉁명스레 뱉은 말은 제가 듣기에도 어색한 투였지만 귀엽다며 엉덩이를 두들기다 다시 달라붙는 영화가 절대 그런 속을 알리는 없었다.
-하지, 마.
-윤영화, 또 윤이 괴롭히지? 옷이라도 입고 와서 밥을 먹든가 해.
마침 씻고 나오던 서인의 잔소리에 영화는 마지못해 떨어져 나가면서도 제 뒷머리를 헝크는 걸 잊지 않았다. 아, 형! 우다다 달려간 영화가 잠잠해진 후에야 슬쩍 뒤를 돌아 본 윤은 젖은 손을 들어 뺨을 쓸었다. 아무리 둔한 영화라도 이렇게 화끈대는, 잔뜩 붉어져 있을 게 뻔한 얼굴을 봤다면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젯밤 갑자기 술을 사들고 나타난 영화는 서인과 부어라 마셔라 소란을 피우다 못해 기어이 제게도 맥주를 먹였다. 물론 혹시나 끼워주지 않을까 주위를 얼쩡대고 서인의 방을 몇 번이나 들락거린 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못마땅한 표정을 한 서인의 암묵적인 허락 아래 윤은 못 이기는 척 찝찔한 액체를 목 안으로 넘겼고, 이런 걸 왜 마시냐며 투덜댄 것이 무색하게 홀짝홀짝 한 캔을 다 비웠었다. 그러고 보니 몽롱한 게 붕 뜨는 기분이었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보니 내 방이었지. 설마 이상한 말이라도 한 건...!
-머리 안 아파?
-응, 나 어제,
-다행이네. 형이 진작에 말릴 걸 괜히, 응? 어제?
-무슨 실수 같은 거, 안 했어?
-맞다, 윤이 너... 형이 진짜 놀라ㅅ, 어이구 눈 커진 거 봐. 걱정 마, 아무 짓도 안 했어. 실실 웃더니 졸리다고 방에 들어간 게 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