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오조윤 160225
근데 그런 일 몇 번 겪고 나니 생각이 바뀜.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그럴 기미가
전혀 안 보이는 거. 그래서 혼자 삽질 못하게 미리 윤이 집 쳐들어와 난장판 만들어놓음. 사실 며칠 전부터 잠깐 여행이라도 가자고
볶아댔는데 싫다고 딱 잘라 말한 윤이 때문에 그럼 이틀이든 삼일이든 옆에 찰싹 붙어 있어야지 결심했겠지. 윤이가 좋아하는 거 사
나른 것도 식탁 위에 곱게 세팅해 놓은 것도 다 제 비서였지만 미역국만은 태오가 직접 끓였으면 좋겠다. 너도 이런 거 먹을 자격
있다고. 너 태어난 거 축복해줄 내가 있다고. 그러니까 더는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라고. 혼자 그런 생각하며 어찌어찌 먹을 수
있을만한 맛 내는 데까지 성공했는데 윤이는 밤이 늦어도 나타나질 않고. 제가 온다고 미리 말하면 싫다고 지랄하거나 도망갈게
뻔하니까 일부러 이틀 전에 찾아온 건데.
결국 자정 지나고 나서도 연락은 여전히 안되고. 기껏 차려 놓은 음식은 다
식어서 성질대로 뒤집어엎으려다 겨우 참으며 소파에 드러눕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달려가는 태오. 니가 웬일이야?
묻는 윤이 보자마자 멱살 움켜쥐고 벽에 밀치면 좋겠다. 젖은 머리칼도 기가 막힌데 옷깃 사이로 드러난 붉은 자국에는 앞뒤 재 볼
것도 없이 눈 뒤집혔을 테니까. 연애까지는 아니어도 가끔 만나는 놈 있는 건 알았는데 애써 모른척했겠지. 그래도 피가 반은 섞인
형제랍시고 저 불쌍한 거 챙겨줄 건 나밖에 없다면서 자꾸만 피어오르는 다른 감정 억누르고 있었는데. 그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는 거지. 벽에 머리 부딪혀서 인상 쓰는 윤이 셔츠 양옆으로 잡아뜯고 거친 숨 내쉬는 태오 보고 싶다.
미쳤냐며 손 떼내려는 윤이 무시하고 셔츠 절대 안 놨으면. 근데 윤이한테 뺨 한대 맞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없이 밀려나면
좋겠다. 너, 너는, 내가 너를... 떨리는 목소리 겨우 내뱉는데 윤이 현관문 열고 나가버리고.
바로 따라가려다 멈칫하는 태오. 이대로 나가서 윤이 붙잡으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담배 두 대 연달아 피우며 겨우
진정하고 윤이 집 나서려는데 문 열자마자 처량 맞게도 바닥에 쭈그려 앉은 윤이 발견하면 좋겠다. 동그란 정수리 잠깐 내려다보다
입술 꾹 깨물고 무거운 발 떼는 순간 웅얼대는 목소리 들리면 더 좋겠다. 가지 마. 굳어 있는 태오한테 어느새 몸 일으킨 윤이가 입
맞추면 좋겠군. 태오 화들짝 놀라서 밀어내는데 왜, 너도 내가 더러워? 윤이 묻자마자 태오가 잡아먹을 듯이 거칠게 입 맞추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