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치조윤 1640
도치 복도 끝까지 뛴 걸로도 모자라서 건물 밖으로 나가더니 운동장 가로질러 달림. 교문 보고서야 정신 들어서 아... 하고 다시 돌아오는데 심장이 쿵쿵 땀도 삐질. 전력질주했으니 당연한 거지만 교실 돌아올 때까지도 진정이 안됨. 심호흡을 해도, 땀을 아무리 닦아내도 소용없겠지. 가슴에 손 올리고 꾸욱 누른 채로 교실 들어서는 순간 윤이랑 눈 마주쳐서 얼른 고개 돌리면 좋겠다. 윤이 속으로 뭐야? 하고는 또 금방 관심 없는 척할 듯. 도치 혼자 제가 왜 그랬나 저건 왜 아저씨를 만나가지고 신경 쓰이게 하나 머리 터질 듯이 고민하는데 그게 제가 윤이를 좋아해서라는 건 계속 못 깨닫는 게 좋다. 집에 가서도 하루 이틀이 지나도 계속 윤이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아서 미칠 거 같으면 좋겠다. 꿈에도 윤이 나타나서 저 노려보고 그 아저씬지 뭔지랑 팔짱 끼고 저 보란 듯이 홱 뒤돌아가고. 그것 땜에 제대로 못 자서 눈 밑도 퀭해지면 좋겠네.
윤이 저만 보면 엄청 티 나게 고개 돌려 버리고 며칠째 말도 안 하는 도치 때문에 짜증 만땅인데 절대 먼저 말 안 걸듯. 내가 누굴 만나건 지가 뭔 상관이라고? 그러고 갔으면 지가 먼저 와서 살갑게 굴 것이지 뭘 잘했다고 눈만 마주치면 피하는데? 흥, 내가 먼저 말 거나 봐라. 도치 윤이가 뭔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몰래 흘끗대다 새삼 그 얼굴에 감탄하면 좋겠다. 입 헤 벌리고 와... 하다가 깜짝 놀라서 얼른 고개 돌리려는 순간 윤이랑 또 눈 딱 마주치고. 그런 도치 때문에 윤이 화는 자꾸 쌓이고. 도치 윤이가 기집애들보다도 예쁘다는 거 저도 눈이 달렸으니까 알긴 했는데. 그게 다였지 좋아한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을 듯. 제 마음도 모르는 바보 도치 이유도 모른 채 계속 마음고생이나 해라.
둘이 말 안 한지 일주일 넘어가니까 애들이 둘이 싸웠냐? 웬일이래? 물어보고 난린데 물론 도치한테만. 윤이는 친구라고 할만한 애가 도치밖에 없고 제 속 얘기 같은 거 하는 것도 도치뿐이고. 다른 애들한테는 완전 철벽인 게 좋다. 도치가 그라지 말고 느도 애들하고 잘 지내보라고 했는데 윤이 싫다고 단호하게 말했던 거면 좋겠다. 중학교 때 안 좋은 일 있었는데 도치한테도 그건 말 안 했다고 해야지. 도치도 윤이 태도 보고 뭔 일 있었구나 싶어서 더는 안 물었던 거고.
어쨌든 그래서 하교도 맨날 따로 하고 있었는데 도치 일부러 윤이 교실 나간 지 한참만에 나갔건만 교문 좀 지나 정류장 가는 길에서 윤이랑 딱 마주치면 좋겠다. 도치 엄청 티 나게 헉하고 서둘러 가려는 순간 윤이 데리러 온 우치 차가 앞 막아서고. 저 째리느라 가늘어졌던 윤이 눈이 순식간에 접히며 우치 향해 웃어주는 거 본 도치. 저도 모르게 차에 올라타려는 윤이 제 뒤에 감추듯 세워놓고 아저씨 이래도 되는 거냐고 경찰서 가고 싶냐고 지랄이나 해라. 윤이 그거 가만히 듣다 얼굴은 니가 아저씨 같은데. 해서 도치 충격 먹고 눈만 크게 뜬 채 굳어 있다 갑자기 눈물 또르르 흘리면 좋겠다. 윤이 그 모습에 못 볼 걸 봤다는 듯 얼굴 찡그리고 얼른 차 타고 떠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