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조윤 151207-01
흐르는 눈물 닦으며 발길 닿는 대로 헤매고 다니던 윤이, 어릴 때 엄마랑 살던 동네가 생각에 택시 잡아탐. 절 돈 받고 떠넘긴 무정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같이 지낼 때는 화장품 냄새 지독한 품으로 안아주기도 했고 새빨간 입술을 제 뺨에 비벼댄 기억도 있어서 찾아가기로 한거. 어제, 아니 몇 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인데 그러고 싶어졌음. 가물가물한 기억 더듬어 비슷한 집 앞까지 오고 나서야 깨달음. 아직도 이런 곳에 살리가 없다는걸. 저와 바꾼 돈으로 멀리 떠났을게 뻔하니까. 윤이 제 한심함에 헛웃음 뱉다가 어두운 골목 구석에 그냥 쭈그려 앉음. 갈 데가 없기도 하지만 집엔 가고 싶지 않고. 그냥 이렇게 얼어 죽어도 될 거 같아서.
그렇게 오들오들 떨고 있는 윤이 귀가하던 지워니가 발견하면 좋겠다. 추운 날씨에 웬 교복 입은 애가 웅크리고 있으니까 손목 붙잡아 일으키는데 생채기 난 뺨 위로 선명한 눈물 자국 가로등 아래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거.
멍한 상태로 저도 모르게 따라 들어온 윤이 뒤늦게 정신 차리곤 방 안에서 서성이며 어떡하지? 저 사람은 뭐고? 그래도 밖은 너무 추워서 선뜻 나가진 못하고 고민만 하는 사이 지원이가 밥상 들고 나타나면 좋겠다. 그 앞에 내려놓고 어쩔 줄 몰라하는 윤이 빤히 올려다보며 배 안 고파? 묻는 순간, 꼬르륵 소리에 윤이 얼굴 화악 붉어지고. 가, 갈게요. 하며 한발 뻗는데 지원이가 앉은 채로 윤이 손 붙들어라. 밥은 먹고. 윤이 그 상태로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끌어당기는 힘에 못이기는척 주저앉아서 잠시 머뭇대다 내밀어진 숟가락 받아들고 느릿느릿 먹기 시작해라. 그러다 보니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엉겁결에 지원이가 따라준 물까지 마시고 나선 저... 하는데 밥상 들고 일어난 지원이의 무표정한 얼굴에 슬쩍 입 다물어라.
잠깐 달그락대는 소리 나더니 지원이 벌컥 문열고 들어와서 구급상자 꺼내다가 윤이 볼에 약 발라주면 좋겠다. 윤이 손 닿는 순간 흠칫대는데 아랑곳않고 정성스레. 윤이는 따끔한 감각에 절로 구겨지는 얼굴에 애써 힘주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그러고나선 윤이만 그대로 두고 나가서 또 달그락. 설거지하는 게 분명한 소리. 윤이 밥만 먹고 나가야지, 했던 것도 잊고 꾸벅꾸벅 졸면 좋겠다. 사실 나가고 싶지 않기도 한데다, 어젯밤은 새다시피 했고,오늘도 몸이고 마음이고 다 지친 상태라 그렇게 됐겠지.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뜨끈한 기운에 노곤해지기도 했고.
윤이 눈 떠보면 티비보는 지원이 옆모습이 보이겠지. 지워니가 자자, 윤아 하며하며 이불 펴주는데. 유니 깜짝 놀라면서 어, 어떻게... 하면 지워니는 그냥 피식 웃겠지. 유니 눈만 깜빡이다가 제가 교복 입고 있던 거 생각나서 아... 하고 나면 지워니가 불 끄겠지. 유니 이불 속에 파묻혀서도 눈동자만 데룩데룩 굴리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밥도 주고 재워주기까지 하면서 아무것도 안 묻는 이 사람은 뭘까 생각하다가 얼마 안가 스르르 잠들겠지.
다음날이 되고 며칠이 지나도 그런 상태가 계속되는데 유니는 지워니랑 옷깃만 스쳐도 흠칫하고 손끝만 닿아도 기겁하고 그래라. 놀라기 싫은데도 저절로 놀라라. 놀라고 나면 미안해요... 하는데 지워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웃어줘라. 유니 자책하면서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계속 저도 모르게 놀라겠지. 맨살 같은 거 절대 안 보여주고 목이든 손목이든 단추 꼭꼭 채우고. 지워니는 유니 손목에 있는 흉터 봤지만 아무 말도 안 할 거고.
그렇게 둘이 같이 살면서 유니는 지워니가 점점 좋아지고 지워니도 유니 좋아지는데 그냥 형처럼 동생처럼 대하는 거. 서로 마음 모른 채 짝사랑이나 해라. 유니는 대학은 갈 생각도 안 했고 일도 구하면 금방 적응 못하고 그만둬서 알바만 겨우 조금씩 하는 정도라 대부분 집에만 있음. 살림이나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