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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조윤 1500-07
dbsldbsl
2015. 9. 1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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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윤의 처소를 찾았다. 저를 향해 조용히 미소 짓는 윤에게 오늘은 스승님께 무엇을 배웠다, 아바마마가 칭찬을 해주시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그저 듣기만 하던 윤은 언젠가부터 제 무릎 위에 세자를 앉히기도 했고, 입안에 당과를 넣어주며 오물거리는 모양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저를 다정히 안아주지도 따뜻한 눈빛을 보내지도 않는 어마마마보다 세자는 선녀님이 더 좋았다. 그린 듯이 고운 얼굴이 좋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품에 안기는 게 좋았다.
그리 매정하더니 저도 핏줄이 당기는 게지. 윤이 세자와 산책 중이라는 내관의 보고에 왕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연화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흩날리는 꽃잎 아래 다정히 걷고 있을 모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둘이 재회했을 때가 겨울 끝자락이었는데 어느덧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가 입이 닳도록 찬양하는 선녀님이 어미인 줄 알 리 없는 세자는 부왕의 앞에서도 늘 윤의 이야기를 했다. 품에 안긴 작은 머리 위에 턱을 괴고 그리 곱더냐 물으면 예,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을 알지 못하는 채로도 이리 좋아하는 것을 수년이나 모른척한 윤이 새삼 괘씸하게 느껴졌다.
윤은 제 배에서 나온 아이의 첫 번째 탄일에도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왕은 연회가 끝나기 무섭게 연화당에 들었다. 꿈쩍 않고 돌아누워 있는 몸에 발길질을 가하는 것으로 모자라 머리채를 움켜쥐고 뺨이 찢어져라 내리쳤다. 그럼에도 윤은 꾹 다물린 입으로 신음조차 뱉지 않고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기만 했다. 왕은 그 지독함에 혀를 내두르다 누구도 빈이 세자의 친모라는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 엄명을 내렸었다. 홧김에 그리했을 뿐이지 끝까지 숨길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은 아이에게 일러주고 싶지 않았다. 네가 그토록 따르는 그이가 바로 생모라는 걸. 네가 그리고 내가 미워 걸어잠근 마음을 바로 얼마전까지 절대 열지 않았다는 걸.
그러고 보니 그 얼굴을 마주 한지도 꽤나 오래되었구나. 매 순간 제 신경을 긁어대고, 제가 낳은 아이에게 무정하여도 절대 놓아줄 수 없는 제 것이었다. 설령 또다시 다른 놈과 정분이 난다 한들 혀를 뽑고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죽음까지 함께할 연분이었다. 동시에 솟아오르는 애증에 주먹을 말아 쥔 왕은 툭, 갑자기 느껴진 무게감에 시선을 내렸다. 어느새 잠이 든 것인지 들떠있던 목소리 대신 고른 호흡을 내뿜는 제 아이가 무릎 위에 늘어져 있었다. 왕은 윤의 것처럼 보드라운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주다 유모 상궁의 품에 세자를 넘기고는 몸을 일으켰다.
-빈에게 갈 것이다.
연통도 없이 급작스레 나타난 왕을 맞이하는 궁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왜 이리 어두운 것이냐?
-빈마마는 고뿔 기운이 있어 일찍 침수 들었나이다.
난감한 얼굴의 상궁을 뒤로 한 채 왕은 마루 위로 올라섰다.
-술이나 내오너라.
직접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서자 소란한 소리에 깬 것인지 윤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리옷 차림의 윤은 눈앞에 버티고 선 왕을 보고도 그저 눈만 둥그렇게 떴을 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상석을 내준 뒤 도포를 걸치는 정도의 움직임만으로도 어지럽던 머리가 다시 지끈대기 시작해 윤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금세 들어온 술상을 앞에 두고 왕은 말없이 잔만 만지작거렸다. 제가 옆에 있는데도 윤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었다. 몇 번이나 눈길을 주었지만 꿈쩍도 않는 모습에 인상이 점점 구겨졌다.
-건방지구나, 잠이라도 든 것이냐?
나직한 어성에도 꿈쩍 않던 몸이 탁, 크게 울린 소리를 듣고서야 움찔댔다. 윤은 머리를 짚은 채 왕과 시선을 맞췄다. 느릿하게 깜빡이던 눈이 어느덧 톡톡, 잔으로 상을 두드리는 왕의 손에 옮겨붙었다. 그제야 술병을 들어 올린 윤이 빈 잔을 채웠다. 왕은 두 잔을 연거푸 비워내고 질문을 던졌다.
-내게 할 말이 없느냐?
그저 자세를 약간 고쳐 앉았을 뿐 아무런 답이 없는 윤을 보며 왕은 입꼬리를 한쪽만 끌어올려 웃었다. 그러고는 직접 술을 한 잔 더 따라 입에 털어 넣고 윤에게 급하게 달려들었다.
바닥에 머리가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왕은 충격에 절로 벌어진 윤의 입을 급하게 겹쳐 물고 머금고 있던 술을 넘겼다. 쌉쌀한 향이 감도는 입안을 샅샅이 훑으며 혀를 얽자 아래에 깔린 몸이 미약한 반항을 했다. 버둥대는 게 성가셔 벌을 주듯 얇은 입술을 으득 아플만큼 깨물었다. 아릿한 통증에 금세 제 의도를 알아차린 윤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렸다. 기다랗게 드러난 목이 새삼 어여뻐 보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옷깃 새로 손을 넣어 판판한 가슴을 주무르다 돌기를 꼬집듯 당기자 윤이 약한 신음을 흘려냈다.
-고뿔이 들었다는 게 허언은 아닌 모양이다. 벌써 이리 달아오를 리가 없지 않으냐.
왕은 한층 거칠어진 손길로 옷을 헤쳐냈다. 하지만 평소보다 뜨끈한 몸에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던 입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은 듯 멈추었다. 수년이 지났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촉. 제가 직접 남겨준 낙인이었다. 왕은 슬며시 그 자리를 베고 누웠다. 쿵쿵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윤아.
-...예.
-윤아.
-예, 전하.
-윤아.
-...취하셨나이까?
왕은 한참이나 답이 없었다. 평소 주량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였는데, 아니 이곳에 걸음을 하였을 때 이미 취기가 오른 채였던가? 모르겠다.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방안을 가득 채운 호흡이 머금은 술내음에 잊고 있던 두통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 윤은 눈을 감고 들릴 듯 말 듯 짧은 한숨을 뱉었다.
가슴팍을 짓누르는 묵직함에 선잠이 깨었다. 얼마 되지 않는 무게 때문이 아닌 건 제가 잘 알았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지독한 열기와 통증, 그것이 살갗 아래 깊은 곳에 새겨진 탓이리라. 여전히 생생한 그때의 기억에 점점 거칠어지는 숨을 애써 고르며 윤은 돌덩이와도 같은 왕의 머리를 치우려 조심스레 손을 놀렸다. 기운이 없기도 했으나 아무렇게나 밀어낼 수 없는 지존의 옥체를 다루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눈을 뜨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위인을 직접 깨우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자꾸만 움찔대는 모양새는 불안함을 가중시켰다. 이렇다 할 소득 없이 결국 손을 거둔 윤은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맨살을 드러낸 채로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으니 고뿔이 배는 심해졌을 것이다. 손가락 끝만 겨우 닿는 이부자락을 끌어다 어설프게 가슴께에 덮은 것이 윤이 정신을 잃기 전 사력을 다해 한 일이었다.
그리 매정하더니 저도 핏줄이 당기는 게지. 윤이 세자와 산책 중이라는 내관의 보고에 왕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연화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흩날리는 꽃잎 아래 다정히 걷고 있을 모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둘이 재회했을 때가 겨울 끝자락이었는데 어느덧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가 입이 닳도록 찬양하는 선녀님이 어미인 줄 알 리 없는 세자는 부왕의 앞에서도 늘 윤의 이야기를 했다. 품에 안긴 작은 머리 위에 턱을 괴고 그리 곱더냐 물으면 예,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을 알지 못하는 채로도 이리 좋아하는 것을 수년이나 모른척한 윤이 새삼 괘씸하게 느껴졌다.
윤은 제 배에서 나온 아이의 첫 번째 탄일에도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왕은 연회가 끝나기 무섭게 연화당에 들었다. 꿈쩍 않고 돌아누워 있는 몸에 발길질을 가하는 것으로 모자라 머리채를 움켜쥐고 뺨이 찢어져라 내리쳤다. 그럼에도 윤은 꾹 다물린 입으로 신음조차 뱉지 않고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기만 했다. 왕은 그 지독함에 혀를 내두르다 누구도 빈이 세자의 친모라는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 엄명을 내렸었다. 홧김에 그리했을 뿐이지 끝까지 숨길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은 아이에게 일러주고 싶지 않았다. 네가 그토록 따르는 그이가 바로 생모라는 걸. 네가 그리고 내가 미워 걸어잠근 마음을 바로 얼마전까지 절대 열지 않았다는 걸.
그러고 보니 그 얼굴을 마주 한지도 꽤나 오래되었구나. 매 순간 제 신경을 긁어대고, 제가 낳은 아이에게 무정하여도 절대 놓아줄 수 없는 제 것이었다. 설령 또다시 다른 놈과 정분이 난다 한들 혀를 뽑고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죽음까지 함께할 연분이었다. 동시에 솟아오르는 애증에 주먹을 말아 쥔 왕은 툭, 갑자기 느껴진 무게감에 시선을 내렸다. 어느새 잠이 든 것인지 들떠있던 목소리 대신 고른 호흡을 내뿜는 제 아이가 무릎 위에 늘어져 있었다. 왕은 윤의 것처럼 보드라운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주다 유모 상궁의 품에 세자를 넘기고는 몸을 일으켰다.
-빈에게 갈 것이다.
연통도 없이 급작스레 나타난 왕을 맞이하는 궁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왜 이리 어두운 것이냐?
-빈마마는 고뿔 기운이 있어 일찍 침수 들었나이다.
난감한 얼굴의 상궁을 뒤로 한 채 왕은 마루 위로 올라섰다.
-술이나 내오너라.
직접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서자 소란한 소리에 깬 것인지 윤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리옷 차림의 윤은 눈앞에 버티고 선 왕을 보고도 그저 눈만 둥그렇게 떴을 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상석을 내준 뒤 도포를 걸치는 정도의 움직임만으로도 어지럽던 머리가 다시 지끈대기 시작해 윤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금세 들어온 술상을 앞에 두고 왕은 말없이 잔만 만지작거렸다. 제가 옆에 있는데도 윤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었다. 몇 번이나 눈길을 주었지만 꿈쩍도 않는 모습에 인상이 점점 구겨졌다.
-건방지구나, 잠이라도 든 것이냐?
나직한 어성에도 꿈쩍 않던 몸이 탁, 크게 울린 소리를 듣고서야 움찔댔다. 윤은 머리를 짚은 채 왕과 시선을 맞췄다. 느릿하게 깜빡이던 눈이 어느덧 톡톡, 잔으로 상을 두드리는 왕의 손에 옮겨붙었다. 그제야 술병을 들어 올린 윤이 빈 잔을 채웠다. 왕은 두 잔을 연거푸 비워내고 질문을 던졌다.
-내게 할 말이 없느냐?
그저 자세를 약간 고쳐 앉았을 뿐 아무런 답이 없는 윤을 보며 왕은 입꼬리를 한쪽만 끌어올려 웃었다. 그러고는 직접 술을 한 잔 더 따라 입에 털어 넣고 윤에게 급하게 달려들었다.
바닥에 머리가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왕은 충격에 절로 벌어진 윤의 입을 급하게 겹쳐 물고 머금고 있던 술을 넘겼다. 쌉쌀한 향이 감도는 입안을 샅샅이 훑으며 혀를 얽자 아래에 깔린 몸이 미약한 반항을 했다. 버둥대는 게 성가셔 벌을 주듯 얇은 입술을 으득 아플만큼 깨물었다. 아릿한 통증에 금세 제 의도를 알아차린 윤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렸다. 기다랗게 드러난 목이 새삼 어여뻐 보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옷깃 새로 손을 넣어 판판한 가슴을 주무르다 돌기를 꼬집듯 당기자 윤이 약한 신음을 흘려냈다.
-고뿔이 들었다는 게 허언은 아닌 모양이다. 벌써 이리 달아오를 리가 없지 않으냐.
왕은 한층 거칠어진 손길로 옷을 헤쳐냈다. 하지만 평소보다 뜨끈한 몸에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던 입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은 듯 멈추었다. 수년이 지났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촉. 제가 직접 남겨준 낙인이었다. 왕은 슬며시 그 자리를 베고 누웠다. 쿵쿵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윤아.
-...예.
-윤아.
-예, 전하.
-윤아.
-...취하셨나이까?
왕은 한참이나 답이 없었다. 평소 주량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였는데, 아니 이곳에 걸음을 하였을 때 이미 취기가 오른 채였던가? 모르겠다.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방안을 가득 채운 호흡이 머금은 술내음에 잊고 있던 두통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 윤은 눈을 감고 들릴 듯 말 듯 짧은 한숨을 뱉었다.
가슴팍을 짓누르는 묵직함에 선잠이 깨었다. 얼마 되지 않는 무게 때문이 아닌 건 제가 잘 알았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지독한 열기와 통증, 그것이 살갗 아래 깊은 곳에 새겨진 탓이리라. 여전히 생생한 그때의 기억에 점점 거칠어지는 숨을 애써 고르며 윤은 돌덩이와도 같은 왕의 머리를 치우려 조심스레 손을 놀렸다. 기운이 없기도 했으나 아무렇게나 밀어낼 수 없는 지존의 옥체를 다루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눈을 뜨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위인을 직접 깨우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자꾸만 움찔대는 모양새는 불안함을 가중시켰다. 이렇다 할 소득 없이 결국 손을 거둔 윤은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맨살을 드러낸 채로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으니 고뿔이 배는 심해졌을 것이다. 손가락 끝만 겨우 닿는 이부자락을 끌어다 어설프게 가슴께에 덮은 것이 윤이 정신을 잃기 전 사력을 다해 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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