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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조윤 150709-03
dbsldbsl
2015. 7.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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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소를 떠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건만 왕은 갑작스레 들이닥쳐 곤히 자던 윤을 억지로 일으켰다. 얇은 적삼 위에 도포만 걸쳐주고 잠에 취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몸을 무작정 밖으로 잡아끌었다. 왼쪽 손목을 쥐고 힘을 주어 당긴 탓에 어깨의 상처가 벌어져 윤이 작은 신음을 내었다. 앓는 소리 따위 들리지 않는다는 듯 통증에 얼굴을 찌푸린 윤을 말에 태운 왕은 한참을 달려 사냥터에 도착했다. 말이 서자마자 윤의 왼쪽 손목을 세게 잡고 훌쩍 뛰어내려 그대로 숲의 입구로 걸었다. 윤이 제 어깨로 힐끗 시선을 내리자 칭칭 감긴 면포는 어젯밤부터 배어 나온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너그러이 넘어가 준다는 것은 단지 말뿐이었는지 왕은 도통 상처가 낫게 놔두질 않았다. 입술을 깨문 채 고통을 참던 윤이 의아함이 담긴 눈을 들어 걸음을 멈춘 왕을 바라봤다.
-놀이를 하자꾸나. 이전처럼 이 숲에 숨어보아라. 짐이 찾지 못하면 상을 내릴 것이고, 짐에게 발견되면 벌을 줄 것이다. 자, 어서.
왕은 머뭇대는 윤의 등을 떠밀어 숲으로 밀어 넣었다. 가만히 서있던 윤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앞으로 발을 옮겼다. 멍하니 걷다 보니 꽤나 깊이 들어온 듯했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싶어 근처에 보이는 큰 나무 뒤에 대충 몸을 숨겼다. -자 이제 찾으마.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 후에는 한참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동틀 무렵까지 시달린 몸은 자꾸만 늘어졌다. 왕은 어깨를 다친 날 밤부터 이전과 다름없이 몸을 취했다. 상처는 어의의 섬세한 치료에도 아물 새 없이 자꾸만 벌어져 피를 흘렸다. 어젯밤에 왕은 윤을 기어이 두 팔과 무릎으로 지탱하게 했다. 다친 왼쪽 어깨와 쇠약해진 오른팔이 아파 끙끙대다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면 긴 머리채를 잡아당겨 억지로 세웠다. 왕은 윤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사정한 후에야 겨우 몸을 돌려눕히고는 거친 몸짓을 이어갔다.
절로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리던 윤은 나무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다 바스락대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개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저를 물어뜯을 태세였다. 오른쪽 허리춤으로 자연스레 손이 움직였지만 검이 있을 리 없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개가 뛰어오르려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고 생각했으나 몸통을 뚫는 화살의 붉은 깃을 분명히 보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윤을 어느새 다가온 왕이 붙잡아 일으키고 싱글거리는 용안을 들이밀었다. -찾았다. 이리 들켰으니 벌을 받아야겠구나. 이제부터 짐이 허락할 때까지 절대 눈을 뜨지 말라. -저... 괜한 말을 뱉었다간 더한 짓도 시킬지 몰라 윤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자, 가자. 왕은 윤을 붙든 손을 놓고 멀어졌다. 앞서가는 발소리에 신경을 집중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윤은 어서 오지 않고 뭘 꾸물대냐는 노성에 불안함을 가득 안고 억지로 보폭을 늘렸다. 절로 떠지려는 눈에 힘주어 감느라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저...전하... 내밀고 있던 손에 옷자락이 분명히 닿았으나 왕은 매몰차게도 성큼 물러났다. 윤은 볼 수 없었지만 이유야 어쨌든 제게 매달리려 애쓰는 마른 손이 보기 좋아 왕은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윤이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바위에 부딪혀 쓰러져도 왕은 빨리 오라 재촉만 했다. 앞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어 험한 산이라도 타는 것마냥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참 후, 드디어 숲을 벗어났는지 밝아지는 게 느껴져 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더듬더듬 말에 올라타자 왕의 팔이 허리에 감겼다. -어허. 마치 앞에서 보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살며시 뜨자마자 질책의 소리를 내뱉는 왕 때문에 윤은 움찔대며 얼른 눈꺼풀을 닫았다.
말이 서고 나니 처소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었다. 수많은 문과 계단을 눈을 감고 어찌 지난단 말인가. 늘 다니던 곳이니 숲에서보단 괜찮을 것이라 저를 다독이고 기억을 되새겨 가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두 눈이 멀쩡히 보이건만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 참 괴롭히는 방법도 여러 가지구나 싶어 윤은 쓰게 웃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왕의 채근에도 조심조심 걷던 윤은 예상치 못한 문에 걸려 넘어졌다. 왕이 익숙한 길을 놔두고 이리저리 돈 모양이었다. 저도 모르는 새 눈이 떠졌는지, 멍하게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윤은 눈앞에 내밀어진 어수를 보았다. -자, 어서. 일어서지 않고 뭐 하느냐.
윤의 손을 잡아 처소로 데려온 왕은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도포부터 벗겨내었다. 얇은 적삼은 어깨의 상처에서 흐른 피와 땀에 젖은 채 달라붙어 가슴에 도드라진 부분까지 훤히 보여 주었고, 속고의 아랫부분은 수차례 넘어진 탓에 여기저기 긁혀 배어 나온 피로 엉망이었다. -곱구나. 한마디를 뱉고 윤을 그대로 바닥으로 밀어 눕혀 입술을 빨아대던 왕은 윤의 호흡이 힘들어질 때쯤에야 겨우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색색대는 윤을 일으켜 앉힌 후 굳은 표정으로 엄한 목소리를 내었다.
-네가 짐이 어여삐 여긴다 하여 어명을 우습게 본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전하. 소인이 어찌...
-내 아직 눈을 뜨라 허락하지 않았거늘, 이리 짐을 바라보는 눈은 누구의 것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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